어느 깜깜한 저녁, 도시의 불빛이 마냥 그리워 저 멀리 보이는 몇 안 되는 상점들의 불빛을 향해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. 비행기도 끊긴 밤, 아무리 차를 달려도 바다에 둘러싸여 더는 갈 수 없다는 막막함에 휩싸이기도 했다. 옛날 노래 '바다가 육지라면'의 가사가 절절히 가슴에 와 닿았다. 나는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것이다.
그런데 막상 서울에 가면 제주의 자연이 사무치게 그리웠다. 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제주의 풍광. 괜찮다 괜찮다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제주의 자연. 어떤 강력한 스트레스도 두 시간쯤 미친 듯이 걷고 나면 스르르 풀어지게 만드는 치유의 힘.
비행기가 덜커덩 제주에 착륙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고, 한라산 자락을 넘어가노라면 제주의 탁 트인 풍광만큼이나 마음이 넓어져 나를 후벼파던 어떤 상처도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리곤 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