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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연의 묘약
2006-11-15  eKongbu
우리는 한 번쯤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“세상에 여자(혹은 남자)가 그 인간뿐이냐!! 실연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거야!”라고, 펼치면 롱코트 한 벌은 충분히 만들고도 남을 넓은 오지랖을 펄럭이며 또 다른 누군가를 소개해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. 하지만 그런 만남은 대부분 흐지부지 실패하고 만다. 왜냐하면 그건 돌팔이의 날림 처방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.

나의 경우도 그랬던 것 같다.
나는 살짝만 긁혀도 전치 16주의 대형 사고라도 당한 듯 죽네사네 소독약에 반창고를 찾을 만큼 참을성 제로의 못난 인간이다. 하물며 심장 한쪽이 썩어가는 듯 아픈 실연의 상처에는 오죽했을까! 소금 뿌린 미꾸라지마냥 온몸을 뒤틀고 거품을 내뿜으며 지인들에게 민폐를 끼쳤다.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주변의 충고대로 나의 아픔을 낫게 해 줄 누군가를 ‘헐레벌떡’ 만나고 다녔던 것 같다.

그 누군가와 잠깐 즐겁기도 했고 가끔은 치료가 된 듯도 싶었다. 하지만 그건 그저 잠깐 통증을 무디게 해 주는 진통제에 불과하지 않았나 싶다.
진통제가 치료약이 될 수 없는 법이다.
이 순간 ‘유종의 미’라는 고리타분한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. 귀로만 들리던 어른들의 잔소리가 가슴을 거쳐 내 입으로 다시 나오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.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사랑에도 유종의 미가 필요한 것 같다.

좋은 끝이 없으면 좋은 시작도 힘들지 않을까?
여전히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사랑을 둔 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한다는 건 “우리 부부는 각방 쓴 지 3년째야! 진짜로 도장만 찍으면 돼! 틀림없이 이혼할 거니까 걱정 말고 사귀자”는 식의 혼인빙자사기나 다를 바 없는 게 아닐까?
실연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충분히 울고 추억하고 슬퍼하고…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마음을 비워내는 것이 아닐까?
감기가 그렇듯 실연의 상처를 완치해 줄 약은 현재 아직 세상에 나와 있지 않다.
섣불리 몸을 움직여 더 큰 병을 만들거나 심지어 그 병을 옮기는 몹쓸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. 자신이 아프다는 걸, 상처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쉬어야 한다.
재채기를 하듯 소리를 지르고 콧물을 흘리듯 눈물을 쏟고 펄펄 끓는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려놓은 채 한동안 끙끙 앓다 보면 어느덧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.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.


신정구·방송작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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